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창 20:7)
두 번째 거짓말에도 탓하지 않으시고 구하시는 하나님
지난 번 애굽에서 이어(창12) 그랄에서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이예요
이렇게 할 줄을 아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그러지 마라'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아마도 이 방법이 그 당시에 다른 족속과의 충돌을 막는 현명한(?) 방법이었나봐요
그렇다 할지라도 지난번에 이어이번에도 거짓말을 했지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셔서 (지난번 애굽 바로에게는 재앙을)
사라를 되찾아오게 하시고 양과 소와 은 천 개를 받는 아브라함이예요
떠돌이 나그네였던 아브라함은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을테지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운 땅은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다고 말씀하시는데요(창 20:19-21)
직접적으로 아브라함과 연관이 있었던 헷족속은 땅까지 준다며 아주 호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방 족족속들이 보기에 이방여인들인 사라의 롯의 아내와 두 딸은 이국적으로 아름다웠을테지요 아름다운 여인들 덕택에(?) 고향을 떠나 이동해 온 유목민을 그 땅의 족속들은 거부감 없이 수용했을 겁니다.그렇기에 사라는 90대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리따운 여인으로 보였겠지요 요즘처럼 세계인을 모두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니 사뭇 다르게 생긴 여인이 신기하게 보일 게 분명합니다. 성경에서 표현되기를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롯 세 사람이 갈대아우르를 떠난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무리였습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있었고, 여종 하갈이 있었으며, 리브가를 데려온 늙은 하인도 무리 중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무리에 속한 여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방 족속들에게 연예인(?)처럼 다가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인들이 있다고 충돌이 없이 수용하지는 않았을테지요 아브라함이 걱정한 것처럼 차라리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취하면 그만인 시대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족속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롯과 헤어져서 그 땅의 족속들이 보기에 작은 족속으로 보였을테고,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있지 않았기에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을테지요
롯도 여호와의 동산처럼 풍족한 땅,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던 소돔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아들이 없었기에 정복하러 들어온 적처럼 보이지 않았을것입니다.
늙은 아브라함이 죽으면 그 무리는 자연스레 흡수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호의처럼 보입니다.
아들을 백세에나 주셨던 것이 어쩌면 아브라함에게 지나치게 긴 기다림이었음은 분명하지만또 이방민족들이 있는 곳에서 아들이 없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훗날 이삭이 성장하여 거부가 되어 우물을 팠을 때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도 빼앗기고 직접 판 우물도 빼앗긴 (창 26) 반면 가는 곳마다 선지자로 인정받고 헷족속이 어느 땅이나 주겠다고 말한 것 등을 볼 때 족속들 간의 힘의 논리도 분명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들도 없는 작은 족속인 아브라함을 수용하면 그 당시 절대적인 힘이었던 부족의 인원수가 늘어 그 힘이 늘테니 아브라함을 포섭하기 위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에게 아들과 같은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있었지만 이방 족속들이 볼 때는 하인들과 양자가 있는 족속을 호의를 베풀고 포섭만 한다면 유업을 이을자가 없기에 큰 충돌없이 수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약속의 아들을 미리 주셨다면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 또한 이스마엘도 없이 여러 족속과 싸워 이겨야만 했습니다. 그 많은 부족들과 싸워 승리를 한다해도 전쟁에서 절대적인 승자가 없듯이 아브라함도 큰 타격을 겪어야만 했을 겁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내가 보기에 좋은 것만 주시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미리 아들을 주셔서 기르는 재미도 느끼고 성장해서 효도도 받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복이라면하나님은 크게 보시고 모든 셈을 끝내시고 가장 좋은 때에 허락하시는 모습을 이번 장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느리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칠십 오세에 약속한 큰 민족의 언약이 백세에 겨우 아들 하나라니요 결국 손자 야곱이 낳은 열 두 아들은 커녕, 믿음의 사람들을 아브라함이 후손으로 삼으시는 큰 은혜를 예상이나 했을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절대 나의 삶을 향한 성실을 멈추지 않는 분은 겨우 백년도 안되는 인생이 담기에는 너무 크십니다.
오늘도 성실히 내 삶을 위해 온 세상을 만지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성경을 읽어보았습니다.
'주와함께 > 하루 한 장 성경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한 장 성경읽기_창세기 24장 (0) | 2022.06.14 |
---|---|
하루 한 장 성경읽기_창세기 22장(묵상+영상) (0) | 2022.06.11 |
하루 한 장 성경읽기_창세기 19장(묵상+영상) (0) | 2022.06.08 |
하루 한 장 성경읽기 - 창세기 17장 (영상+묵상) (0) | 2022.06.03 |
창세기 15장 (개역개정, 묵상) (0) | 202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