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학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친구들중에 목사님도 있고 사모님도 많습니다.
스스로 많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이차이 많이 나는 목회자 부부인지라 벌써 단독 목회지에서 사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친구들도 두어명 생겼습니다.
그 중 한 친구는 첫 담임목사로 부임한 교회가 교회도 크고 사택도 좋아서 마음 껏 축하해 주었더니 곧 성전 재건축 중이라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며 기도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떠난 모교회는 성전 건축을 이유로 10여년 사역하신 목사님이 교회를 떠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 지내고 있는 동네의 어느 교회에서는 1,2층의 벽면 공사가 채 마무리 되지 않아 다시 건축을 시작하려니 중직자들에게 작정 헌금을 종용하며 목사님의 사례비 절반은 건축헌금으로 재반입되고 사모님은 요양보호사로 일을 다니시는 중입니다.
목회자의 자녀로 자라 신학교를 나온 저는 단순히 화려한 교회의 건축물을 아름답게만 볼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아름다운 건축물을 위하여 누군가는 피눈물을 삼키며 헌신하였겠구나
그 노고를 하나님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교회는 신문에 오르내린 적이 있습니다.
어찌나 화려하고 크게 지으려고 노력하였는지 측량이 잘못되어 공용면적을 침범하기도 하였다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예전에는 가난한 자를 돌보던 교회가 부자와 귀족의 사교장이 되어 가는 듯한 실정은 쓰라리게 다가옵니다.
오늘 말씀은 최초의 교회이자 성전인 광야에서의 성막을 만들고 있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로 휘장을 만들고 금 갈고리 쉰개를 만들고 놋 갈고리 쉰개를 만들며 조각목으로 성막에 세울 널판을 만들고 금으로 갈고리를 만들고 은으로 네 받침을 만드는 등 머릿속에 그려지진 않아도 그 재료가 어마어마 합니다.
제사장의 옷과 성막을 만드는 재료를 보면 화려하고 값지며 귀한 것들로 만들어집니다.
특히나 광야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만들기도 어려울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성막을 만듭니다.
사실 여기에 사용된 많은 부분들은 전 장인 35장에서 금송아지 사건 이후 자신들의 장신구들을 모두 빼어 하나님께 드린 회복의 예물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것에 대한 큰 감동과 감사로 자신들의 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예물은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헌물이 됩니다.
고장난 복사기가 원로장로님의 헌물이라서 버릴 수 없어서 사무실 한 쪽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오래되어 부품이 나오지 않아 고칠 수도 없었지만 장로님께서 그 복사기에대한 자신의 지분을 강조하시니 함부로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후 고장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은 헌물일 수 있지만 그 처리과정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면 내 것을 교회에 둔 것일 뿐 헌물이 아닌 것입니다.
예물을 가져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 헌물을 성막에, 내 헌물은 가장 귀한 지성소에 달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길 소망하는 마음에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만들어 가져왔습니다.
내가 가져왔지만 내 손에서 떠난 순간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건축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7절)
대출은 참 좋은 제도입니다. 가난한 자들도 대출이란 제도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때는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첫 성전인 성막을 짓는 오늘의 본문에서는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무리하게 이방민족에게 빌리거나 만들면서 백성을 재촉하지 않고 이러이러한 것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자 모두 가져왔으며 쌓아두고는 이제 충분하니 더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공포합니다. (6절)
저는 이 역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뜻대로 정하고 하나님이 따라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가 모든 것이 충족하고 넉넉할 때 한마음 한 뜻으로 성막을 건축했던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성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사사시대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물이든 건축이든 하나님의 주권을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와함께 > 하루 한 장 성경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38장 묵상_헌금의 종류 (1) | 2022.09.28 |
---|---|
출애굽기 37장 묵상_가장 귀한 말씀 (0) | 2022.09.27 |
출애굽기 35장 묵상하기_회복 (1) | 2022.09.23 |
출애굽기 34장 묵상_벌은 면제되지 않는 하나님의 용서 (0) | 2022.09.22 |
출애굽기 33장 묵상_주 없이 살 수 없네 (2) | 2022.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