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와함께/하루 한 장 성경읽기

출애굽기 40장 묵상_성전의 가장 큰 기능

by jujumomy 2022. 10. 1.
728x90
반응형

 

우리나라만큼 빨간 십자가가 많은 곳도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대형 TV나 전광판으로 강대상의 십자가가 갈 곳을 잃은 교회도 있지만 대부분 십자가는 예배당 앞쪽에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다른 종교에서처럼 우리는 십자가를 믿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지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해주거나 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십자가를 왜 교회마다 달아놓고 악세서리나 집의 장식으로 지니는 것일까요?

 

오늘 성막의 쓰일 물건들을 모두 만든 후 성막에 배치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을이 제사장의 옷을 입었습니다. 

성막에 배치하기 전에는 그저 물건에 지나지 않았지만 모두 제자리를 찾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34절)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이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습니다.(38절) 

 

성막 역시 하나님이 아닙니다. 번제를 드리는 그 번제단 역시 신이 아니라 물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들라고 명하시고 그것에 신성을 띄게 하신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가 2차원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생각해보면 애초에 없었으면 될 것을 굳이 동산 가운데에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콕 집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 2:9,17) 

생명 나무도 있었지만 언급하지 않으시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그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에덴동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셨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동산 중앙에 두시고 눈에 보이는 곳에 두시고는 단 하나의 규율이자 율법, '먹지말라'고 하십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첫 사람 아담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창 3:8 죄를 지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고 죽지 않았으며,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하나님은 그를 손으로 덮으셔서 대면하여 죽음을 당하는 일을 방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성막, 십자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연약한 우리에게 "나는 여호와, 스스로 있는 자 이니라(출 3:14,15)"라고 말씀하시는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닐까요?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10년 전 다녔던 교회에서 함께 동역하며 같이 먹고 자고 나눴던 믿음의 친구들이 결혼과 이사로 멀어지자 연락하기도 꺼려지고 간혹 sns를 통해 안부를 물어도 더이상 대화가 진행되기 어려운 경험이 있습니다. 

단지 그 교회에서의 친구들 뿐만이 아닙니다. 모교회 친구들은 어릴 적 토요일부터 주일까지 같이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결혼을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 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 계시고 지켜보고 계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지켜본다는 표현조차 쓸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본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의지하고 따르기 어려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태초부터 우리 주변에 율법이나 성막, 그리고 피 묻은 십자가, 교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며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인정하며 끝없는 사랑을 기억하는 사랑의 증표였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완성된 성막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며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존재를 늘 기억하게 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전 3:16)

마치 오늘 말씀에 성막에 구름이 내려 앉듯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내려 앉으셔야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 성전을 주시고 십자가를 주시며 교회를 주셨습니다. 

세상살이에 치우쳐 선악과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나무에 닮긴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태초의 그들처럼 동네마다 솟아난 십자가를 보며 아무 감흥이 없다면 태초에 선악과를 먹은 그들처럼 세상살이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닐까요..?

 

제가 생각하는 성전, 즉 교회의 가장 큰 기능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상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와 친교가 당연 주된 기능이지만 1차원적으로 교회, 즉 오늘 말씀의 성막처럼 그 유형물이 지닌 고유의 기능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신다는 1차적 상징성 말입니다. 

따라서 예배당 앞의 십자가나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십자가를 보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묵상하다보면 성령님이 구름처럼 내 마음 속 성전에 임재하는 것이 느껴질 것입니다. 

 

내일은 주일입니다. 

피로 사신 우리 교회를 통해 큰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주말이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고 스스로 존재하고 계심히 강렬히 느껴지는 주일이길 소망합니다.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던 것(38절)처럼 나의 모든 인생 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