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은 광야생활 중 성전의 역할을 톡톡히 감당한 막사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까지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자 속죄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하고 척박하기 그지 없는 광야에서 성막을 짓는 일은 굉장히 힘들어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주신 증거궤를 거룩하게 보관하기 위해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십니다.
증거궤는 인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증거궤의 위엄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증거궤가 곧 하나님은 아니지만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여지는 일부처럼 증거궤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블레셋 전투에 임하였다가 언약궤를 빼앗긴 후 죽임을 당했고(삼상 4장) 블레셋의 신 다곤이 언약궤 앞에 엎으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으며 언약궤가 머무른 아스돗 지역엔 독한 종기의 재앙이 임했습니다(삼상 5장).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증거궤를 전쟁도 없이 스스로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증거궤가 돌아오는 가운데에도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오만) 칠십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삼상 6:19)
이렇듯 인격은 없으나 인격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궤를 위해 광야에서 성막을 지었습니다.
이 성막은 엘리의 두 아들이 전쟁에 이용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성막을 어떻게 꾸몄는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신학 전공자가 아니라 규빗이나 폭에 대해서나 휘장과 갈고기, 베실에 담긴 의미는 잘 모릅니다.
혹여 잘 못 해석했다가는 이단의 교리에 이용되기도 합니다.(천국의 표면이라나...?)
그러나 오늘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말씀을 읽으며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성막의 문들과 증거궤를 위하여 휘장을 만들어 구분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보인신 것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증거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십계명이 담겨 있었지요.
그 위에 속죄소를 둔 것은 죄에 빠져있는 우리가 십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증거궤와 지성소를 구분하기 위한 휘장이 있어 증거궤를 아무나 함부로 보지 못하도록 하셨지만 이 휘장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마27:51)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란 책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여주셔서 모세가 지은 성막인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시기에 증거궤를 간직하고 있는 성소와 다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척박하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휘장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윗덮개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냥 자른 나무가 아닌 조각목으로 널판을 만들되 위, 아래, 옆 모두 둘러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가식적으로 숨기는 것이 아니라 보혈의 피로 물들여 아름다운 것들로 감추고 선한 영향력만 드러내는 오늘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내 안에 성소와 지성소를 만들어 하나님 만이 그 안에 거하시는 하루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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