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그들이 두려워하자 모세만 하나님을 뵙고 그들은 멀리 서 있었습니다. (출20:21) 하나님과 언약을 세운 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언약의 피를 뿌린 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이 장로는 민수기 11장 16절에 의하면 노인 중에서 지도자가 될 만한 자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족장이나 원로를 뜻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드로가 모세가 모든 재판을 관장할 때 권하였던 지도자의 조건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출 18:21)라고 하였는데, 이 70인의 장로 역시 이러한 조건에 의해 선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들은 레위지파라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맞지만 속죄제를 드릴 때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레 4:15)
놀라운 사실은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습니다.(창46:27)
예수님도 70명을 세우시고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앞서 보내셨습니다.(눅 10:1)
사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이스라엘백성을 선택하셨지만 그 중에서 70인을 따로 구분하셨고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처럼 사용하시고 만나주시는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우리는 택한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벧전 2:9, 계1:6)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두가 죄에서 해방은 되었습니다만, 모두가 하나님을 뵐 수 없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애굽에서 나온 육십만명이 모두 가나안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1세대로 불리는 60만명 중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만이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에겐 질투가 있습니다.
나는 모세나 아론, 야곱이나 아브라함은 고사하고 이 70인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불러주신 12명의 사도(그 중 11명)에 속하듯이 피동적으로 선택되어지고 불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어쩌면 모세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불르신 케이스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태중에서부터 선택되어진 모태신앙 그 중에서도 신앙을 지킨 요즘에는 얼마되지 않는 사람들 중 한명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선택되어지고 불려진 은혜가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모세나 아브라함을 감히 부러워하지 못하고 70인에라도 들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며 한평생을 살아온 장로들처럼
나의 삶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주님 안에 있길 소망합니다.
그 여정의 한 발자국이 되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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