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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함께/하루 한 장 성경읽기

민수기 21장 묵상_원망 대신 기도를!

by jujumomy 2022.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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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우다보면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아이의 징징거리는 칭얼거림에 안되는 것도 들어주게 되는 경험들을 하곤 합니다. 

첫째를 키울 때는 하나에 집중하다보니 안되는 것은 끝까지 안되는 원칙을 지켰는데, 둘째는 바쁘고 급한 상황에서 혹은 큰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데 잡아끌거나 울고불며 안되는 것(보통은 TV, 사탕 등)을 그냥 줘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곧 4돌이 다가와 요구사항도 다양해지고 예의상 혹은 인간관계 상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훈육하려다 보면 되려 "말하지 마!" 등으로 부모를 통제하려 들 때가 있는데, 그동안 얼마나 허용적이었나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 둘을 키우다보니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적용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그분의 백성 삼으심에 따라 대단한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출애굽이 시작되어 엄청난 기적 속에서 탈출을 할 수 있었고 대국 애굽과 전쟁을 하지 않았음에도 애굽 왕 바로와 그의 모든 지휘관들이 몰살 되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또 원망할 때마다 벌은 받았지만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면 물이 생겼고,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면 아침에 바구니들고 나가 거두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어느덧 가나안 땅에 들어섰음에도 아직도 아기처럼 원망하고 이뤄지길 바라고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거인이 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에돔이 강한 손으로 막았을 때 등 이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서야 할 때임에도 아직도 처음 애굽에서 나왔을 때처럼 앞을 가로막는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지 못한 채 "우리를 여기서 죽이려고 데려왔냐!"는 울부짖음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기를 때 아이를 용서하고 허용하게 되는 것은 바쁜 탓도 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기조가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일주일에 1회 편의점 가기로 약속하고 월요일날 다녀왔는데 수요일날 다른 친구가 과자를 먹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아이에게 원칙을 다시 한번 설명하고 강조하면서 나도 모르게 손잡고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도 여러차례 이 백성을 쓸어버리시고 다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 때마다 모세의 중보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지키게끔 해달라는 모세의 간청이 있었지만 끝까지 참으신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을 향한 사랑이었고, 나중은 모세와 그의 백성들을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모세의 기도에대한 응답이라면 모세를 설득하시고 새로운 백성을 세우시면 그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작지 않으시기에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참기를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른 것이 나옵니다. 

원망이 아닌 기도를 한 최초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손에 가나안 사람을 넘기셔서 완전히 멸망을 시켜버리십니다. 

호르마 땅에 거주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을 사로잡아 간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족속의 명칭도 없이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서원까지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담대히 전쟁에 임했을 때, 그들은 아모리 왕 시혼의 모든 성읍을 빼앗고 헤스본에서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산 왕 옥의 땅까지 주시겠다 말씀하시자 그들이 바산 왕 옥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광야에서의 40년은 그 누구보다도 훈련의 장 같습니다. 

기도를 하면 적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지만 원망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벌에서 구원을 받으나 적은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한 죄로 벌을 받고 그 일을 용서받느라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었으니 하나님이 같은 힘으로 도와주신대도 적을 완전히 멸망시킬 근본적인 힘이 그들에게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벽돌 한장 손으로 안 만져도 여리고가 무너져내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면 적의 멸망은 당연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한 죄로 적의 멸망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군과 적군처럼 현실에서는 절대적 대적도, 반드시 물리쳐야 하는 적들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전쟁같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의 문제, 가정에서의 문제, 시&처가 갈등, 부부갈등, 경제적어려움, 사업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전쟁처럼 때론 이기기도 하고 때론 타협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과거가 되기도 하지만 예전부터 계속 이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오늘 호르마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서원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도와주신다면 저 역시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자 정말 크신 은혜로 호르마='완전히 멸함'의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면 에돔에서 우회하여 마음이 상하여 원망할 때, 불뱅에 물려 죽고 놋뱀을 바라보아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크신 능력을 믿는다면 나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섭리를 기대하는 성숙한 신앙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대적과 같은 내 삶에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가 승리를 얻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전부터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나의 믿음의 척도를 돌이켜보게 하시고 좀 더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서원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삶의 전장에서 하나님의 성호를 휘날리며 승리하는 하루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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