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요셉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요셉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셉에게 나와 절을 할 때 곡식단들과 별들이 형이 아니었나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형들이 와서 머리숙여 경배하고 곡식을 구할 때 요셉은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꿈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그를 형들이 예전처럼 시기와 질투를 할 수도 있고, 혹은 형들이 예전처럼 자기를 미워해서 형제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번 학대를 당하면 그것에 트라우마가 생겨 생각처럼 복수를 한다거나 혹은 용서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요셉 역시 죽음의 공포와 버림받은 상처를 가지고 20년 넘게 타지에서 지냈습니다.
노예에서 총리가 된 요셉은 그의 권력으로 본국, 본가에 갈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죽고 형들의 미움만 남았을까 염려되어 집에 가보기 보다는 집의 일을 잊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형들이 자기 앞에 머리를 숙여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마음, 생각을 알아보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형들을 시험해 보는 요셉의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주신 가나안땅에서 지내야 옳지만 다시 애굽으로 왔다가 돌아가는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를 만나는 중요한 사건이기에 출애굽의 전신인 애굽으로의 이주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화해의 사건은 단순 다툼으로 '미안해'와는 차원이 다른 용서와 화해였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괄목하고 각자의 족속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노년의 야곱
요셉을 잃고 고통 속에 늙어가던 야곱은 베냐민마저 잃을 것 같은 불안에 하나님을 찾거나 제단을 쌓지 않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만나주셨던 하나님을 마치 잊은 듯 보입니다. 물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창 46:2) 하지만 그 전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베냐민을 지키려 필사적인 모습입니다.
심지어 아들을 위해 손자의 목숨을 담보로 잡기까지 하죠
이상하게 아브라함처럼 야곱은 새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계속 야곱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브니엘에서 얻은 후 에서와 화해를 하고 숙곳에 이르렀습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고 세겜에서 평안히 지낼 때 그때, 야곱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 것 같습니다. 그 후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주인공이 야곱에서 요셉으로 넘어갑니다.
2022년 기준으로 기대 수명이 평군 83.5세라고 합니다. 고령의 암환자의 수술 후 3~5년 생존율도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신속히 간다는 70~80년, 하지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우리의 신앙의 척도는 기대수명인 83세를, 평균수명인 84세를 살아가는 동안 꾸준히 유지될 수 있을까요??
물론 야곱 역시 죽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12명과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뜨겁게 만난 하나님, 겨루어 이겼던 신앙의 모습은 숙곳, 세겜, 벧엘에서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 앞에 꾸준한 신앙, 꾸준한 교제, 꾸준한 모습이 얼마나 어려울까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
우리의 신앙이 미지근할 바에는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뜨겁게 단순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길 오늘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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