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성경읽기_창세기34장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창 34:5
아버지 야곱
세겜 땅에서 히위 족속의 추장 세겜에게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야곱은 어차피 강간 당하였으니 세겜과 결혼시켜서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 통혼을 하며 매매하며 친교하자는 하몰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표하지 않습니다.
앞서 가나안땅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본향의 외삼촌의 딸과 결혼한 야곱에게 그 땅의 여인들과의 결혼이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여성의 권익이 없던 시절 그저 딸을 줘버리고 이방 여인들을 맞아들이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로 이 일을 해결하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서로 우애가 좋았던 듯 합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을 속여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삼일에 아직 아파할 대에 그들을 모두 죽이고 누이 디나를 되찾아 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첫 전쟁이며 첫 승리입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전쟁에 참여는 했지만 연합전쟁이었으므로_)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습니다. 그들의 물건을 노략해서도 아니고 히위 족속을 종으로 삼아서도 아니라 단지 주변 족속으로부터 공격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에서 평안히 세겜에 도착한 모습과는 굉장히 반대된 모습입니다.
디나의 강간 사건을 통해 히위족속과 연합의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거나 연합을 거부 혹은 찬성하거나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관망하는 듯 보입니다.
그렇가면 장성한 아들들이 전쟁으로 이 일을 해결했을 때, 형 에서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아들들을 나무랐습니다.
이는 전쟁, 다툼을 싫어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던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야곱 역시 조용하고 다툼을 싫어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방 민족과의 연합의 위기에서도 묵묵히 있는 것은 야곱의 성격에 딱 맞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허버지 뼈가 어긋나면서까지 복을 구하던 야곱이 하나님이 싫어하실 수도 있는 이방 족속과의 연합에 가만히 있는 것은 어찌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야곱은 그의 아들을 요셉과 베냐민 둘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10명의 아들들과 딸 디나는 차라리 이방 족속과 연합을 시켜 안전을 보장받는 편이 낫다는 셈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44장의 유다의 말을 살펴보면 22절: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 27절: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등 야곱도 그의 아들들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는 부자지간 이었습니다. 때문에 화평을 선택하고 자식이나 자식같지 않은 자식들을 활용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생각과는 반대로 시므온과 레위의 전쟁 덕분에 다른 이방민족과 하몰의 생각처럼 흡수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는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나중에 애굽으로 올라갈 때 디나까지 따라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디나는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가족과 함께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주변 족속들의 공격도 받지 않고 그 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 누구도 구하지 않았으며 혈기와 분노로 전쟁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일생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하나님은 늘 먼저 나타나주셨습니다. 하지만 야곱 또한 하나님을 믿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죠. 그 근거로는 하나님의 복을 지독히도 집착하리만큼 구하던 야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비록 정이 없는 자식들의 일이지만 그로 인해 위기가 예상되어 노하여 나무라던 야곱의 모습과 말에서 하나님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착한 세겜 땅에서의 평안이 깨질까 걱정만 하였죠
더군다나 시므온과 레위 역시 하나님을 위한 성전(聖戰)이 아닌 누이를 위한 복수였습니다. 이 일을 활용하시고 진행시키시는 큰 하나님은 보이지만 세밀히 간섭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문인지 결국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의 저주의 가까운 유언을 받으며 레위는 크게 쓰임을 받았지만 분깃이 없었고, 시므온은 히스기야 때 세일 산으로 도망하며(역상 4:32) 칼을 의지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묵묵히 아들들이 오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다면 어땠을까요?
레위와 시므온 지파가 유다지파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평안함 가운데 위기가 왔을 때 우리는 인간적인 최선을 먼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보다 완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위기와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