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함께/하루 한 장 성경읽기

하루 한 장 성경읽기_창세기 22장(묵상+영상)

jujumomy 2022. 6. 1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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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완결판!!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재물로 바친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와있듯이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일부러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며 하나님의 성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셨을 때,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 아담과 교제하셨던 모습이 아브라함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살뜰히 챙기셨습니다. 

비록 멸망 되었지만 만약 의인 열 명이 있었다면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성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지요 

 

그런 아브라함이 이삭이 태어나자 온 신경이 아이에게 향했나봅니다. 

하나님께서 질투를 하실 정도이니 노년에 얻은 아이에게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실제로 아이를 위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으며 이후에 이삭의 성품이 온화한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 할머니였던 아브라함과 사라가 지극 정성으로 아이를 길렀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부모에게 아이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요,

특히 어렵사리 낳은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좀 더 기민하게 반응하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은 누구보다 소중한 보물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이삭을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아이가 자랐으니 아이에게 제사를 드리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제사의 재물로 쓰라고 하십니다. 

 

성경 곳곳에 자녀를 재물로 바치는 종교가 있었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셨다고 기록된 바 있습니다. 

아브라함 전에 그런 종교가 이미 형성이 되어 있었는지, 혹은 이 일을 계기로 그 지역에 그런 종교가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삼일만에 그 산에 도착합니다. 

 

바로 앞장에서 이스마엘이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해 울고 있던 하갈과 

아들을 칼로 쪼개고 불에 태우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섰던 아브라함의 모습은 

닮은 듯 달라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슬퍼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며 아들을 좀 더 오래 두고 보려고 길을 돌아 가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9)"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도 전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생각컨대, 처음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 오늘 말씀에도 나오는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 하시는 그 말씀(22:17)만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로 부르겠다(창21:12)'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이삭은 죽지 않을 것이고 설령 죽더라고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살리시리라는 믿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굳은 믿음은 설령 실수로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변경할 수없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듯 보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돌이키시거나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리시지 않으시지만, 노아의 홍수 전 시대와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의 때 사람로 인해 후회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곤 그들을 가차없이 버리셨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믿고 있기에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화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변함이 없으시다는 굳건한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순종 역시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

특히 이번 22장에서 네 사랑하는 독자를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이 무렵, 아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번제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수 있을만큼 자란 청년이었습니다. 

게다가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 23:1절에 사라가 127세로 죽었으니 37세보다는 어리지만 어린 아이는 아니었던 듯 보입니다. 

100세가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르는 청년을 결박하고 제단 나무 위에 올려 놓는 것이 가능할까요??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지만 10대 청소년들이 나무라는 60대 어르신을 때려서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악질적인 사건이지만 사람이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네 아버지"라며 반항 한 번 없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삭은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박되어 나무 위에서 칼을 기다립니다. 

왜 하나나님이 이삭에게서 나는 씨를 인정하시겠다 하셨는지 짐짓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나중에 나오지만 이삭은 우물을 빼앗기면 싸우거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그저 다시 팠습니다. 

다툼이 끝날 때까지 피하던 온화한 성격에서 예수님의 성품과 조금 닮아보입니다. 

 

독자를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 그리고 진짜 독자를 희생해서 우리를 살려주신 하나님 

우물을 빼앗기면 다시 팠던 온화한 이삭, 박해를 받으면 다른 동네로 피하던 예수님(마10:23)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친밀하게 지내셨는지 알 듯 보입니다. 

 

오늘도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과 친밀하였던 아브라함을 질투하며 더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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