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성경읽기_창세기 21장(묵상+영상)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21:17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삭으로 내려가고 그 민족이 성경의 주인공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적절한 때 보내주신 독자입니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완성이 되지요
하지만 이번 장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은 바로 하갈과 이스마엘입니다.
사실 하갈은 임신했을 때 한 번 쫓겨나서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었지요
술길 샘 곁에서 하나님을 만나 아들의 이름이 이스마엘이며 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바 있습니다.(창 16장)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갈은 이 말씀을 지키지 않은듯 보입니다. 혹은 본인은 지켰으나 아들인 이스마엘이 지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인데요(창 21:9절)
이로 인해 아브라함의 근심이 되었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로 쫓겨나게 됩니다.
창세기 16장에서 분명히 이스마엘이 크게 번성하여 수가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로 번창한다고 하셨지만 그 말씀을 기억하고 믿기에는 하갈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암담합니다.
떡과 물 한 가죽부대는 이미 소갈되었고 샘은 찾기 어렵고 내려쬐는 태양은 너무나 뜨겁습니다.
겨우 관목덤불(가시덤불을 이룬 작은 나무들) 그늘에 이스마엘을 두고는 대략 100m 정도 떨어져서 서로가 보이는 장소에서 목놓아 울고 있습니다. 그저 도우심을 바라며 우는 것이 아니라 죽을 것이 자명하다는 판단으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마엘이 탈수증상으로 쓰러졌을 수도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에는 '뉘어 놓고서'라고 적혀 있는데, 아브라함이 86세에 얻은 아들이므로 14세 전후의 아들을 아기처럼 뉘어 놓는다는 것은 탈수, 탈진 증상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자식이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떨어져 울고 있는 하갈의 모습은 애처럽다 못해 마음이 아플 정도입니다.
'아, 이렇게 죽는 거구나. 혹시 자식이 죽고 나만 살아남으면 어쩌지? 차라리 같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등등 엄마로서 귀하고 귀한 자식이 죽어 갈 때 내가 죽었으면 하는 바램마저 당연하게 느껴질 그 처량하고 슬픈 상황에서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아브라함에게 아이와 하갈을 내쫓으라는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던 하나님은 애굽 여인과 그의 아들을 지켜주십니다. 죽음이 코앞에 이른 이 시점은 물론이거니와 그 아이가 목숨을 구하고 자라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셨습니다.(창:21:20) 그리고 이스마엘이 137세의 향년으로 죽을 때까지 번성하고 자손들이 그 이들대로 촌과 부락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을 생각하시여 롯을 구해주신 하나님께서(창 19장)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던(창 17:17) 아브라함의 말을 들으시고 약속하신대로(창 17:20) 지켜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자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언약의 아들도 아니고 이방 여인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지키시고 살피시며 열 두 두령을 낳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끝이 없는 사랑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줍니다.
이 사랑은 아브라함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오늘 말씀에서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등과 같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앞 장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비록 광야이나 곳곳에 다른 족속들의 위협이 있으며, 특히나 살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촌과 부락을 이루며 살아 남은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절대적으로 사라졌을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피를 물려받아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 안에 있었던 하갈과 이스마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된 우리에게도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살핌을
기억하고 기대하며 기도함으로 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