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면 가사, 육아는 오롯이 감당해야 하나요?
우리집은 외벌이이다.
조만간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인 외벌이지만 외벌이가 아닌 것 같은 그럼에도 외벌이다.
우리집 가계는 남편의 수입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만 3세, 만 5세 두 아이는 나의 헌신적인 사랑에 의해 스스로 정리를 하거나 씻거나 하지 못한다.
큰 아이는 요새 스스로 하려고 하지만 작은 아이는 스스로 하다가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곤 한다.
나는 앞서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결혼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공부하겠다고 달려들어
신혼초 집에서 수험생으로 지냈다.
공부도 하고 집안살림도 하고 요리도 하고~~
혼자 다 해낼 수 있었다. 거기에대해 서운함은 있어도 버거움, 힘듦, 억울함까지 느껴지진 않았다.
신혼이라 애정이 넘쳐서가 아니라 성인 둘이 사는 살림은 하다보면 끝은 있었다.
다년간의 자취생활 덕분에 2~3시간이면 저녁식사 준비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절대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간 틈을 타서
장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저녁준비하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심지어 폴더매트 덕분에 방의 넓이는 못해도 2배가 된다. (매트 앞,뒷면 청소)
그러면 언제 청소했냐는 듯 다시 온 방에 장난감들과 먼지들이 수북하다.
아이들은 잠자기 전까지 꼼꼼히 움직이고 어지럽힌다.
이상하게도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까지 해서 발에 밟히는 거 하나 없었는데
아이들이 오면 온 집에 모래까지 밟힌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땐 내 물건도 제자리에 두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주말부부를 하다가 내가 내 일을 정리하고 아이와 함께 집에 들어왔을때
신랑은 물건 정리 좀 하라고 매번 잔소리였다.
너무 서운한 마음에 내가 신혼 때도 지저분 했냐 아이랑 있는데 집이 깨끗하길 바라냐고 반문했더니
신랑은 아이 물건으로 지저분한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왜 내 옷, 내 양말은 온 방에 돌아다니냐며 그것을 치우라는 소리란다.
나도 당시엔 내가 잘못인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모습도 살펴보니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기 전에 아이들이 심부름을 시킨다.
아이들의 요구가 없더라도 일단 아이들 손을 씻기려면 내 옷 쯤은 아무데나 던져지기 일쑤다.
그러니 내 물건조차 정리하기가 힘든 것이다.
언젠가 아이의 나이가 비슷한 지인 부부와 이야기 나누던 중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정을 이루면 크게 3분류의 큰 일을 해야 한다.
가사 + 육아 + 경제활동 이 그것인데, 보통의 남자들은 경제활동만을 하면서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한다.
그렇게 되면 부부 간의 균형이 흔들리게 된다.
그럼, 육아를 같이 하면 균형이 맞춰질까?
앞서 말했듯이 아이가 없을 때의 가사와 있을 때의 가사의 양이 달라진다.
반면, 경제활동은 아이가 있을 때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생겼을 때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가사와 육아의 일정부분도 맡아줘야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반반문화에 익숙한 MZ세대도 아니다.
오히려 손해보는 것이 이득이라는 꼰데문화에 더 익숙한 편인 것 같다.
주부로서, 엄마로서 손해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해서 만든 가정이
가족구성원 모두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으면 한다.
나에게는 집이 직장이다.
하지만 퇴근도, 출근도, 휴가도, 식사시간도 제대로 없는 곳에 편안한 안식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엄마의 당연한 희생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 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10여년 전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는 아직도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그때보다 오히려 여권(女權)이 신장이 되었지, 오히려 요즘은 남자들이 불쌍하다 라는 얘기들을 하지만
냉소적으로 바라볼 때 모두가 불쌍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가사의 대부분을 내가 감당했다.
그것은 크게 버겁지는 않았다.
가끔 이벤트가 있을 때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대부분 내가 담당했던 일이라 도움을 받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내일 혹은 다음주 애들 어린이집 등원하면 해야겠다며
버거운 일도 혼자 감당하려 애를 쓰기도 했다.
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부부 모두 조금의 숨 돌릴 시간만 생길 뿐 여전히 삶은 진행되고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