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함께/하루 한 장 성경읽기

민수기 23장 묵상_발락과 발람.

jujumomy 2022. 12. 1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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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왕 발락을 만난 발람은 발락의 기대와 달리 총 3번에 걸쳐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됩니다. 

그 중 두번째 축복까지의 말씀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동안 점괘로 미래를 예언하며 복과 저주를 빌었던 발람이 하나님께 여쭤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발람 개인의 일생 중에 가장 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발락은 귀한 제물을 준비하여 주었음에도 자신의 뜻과 전혀 반대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화가나지만 자신의 뜻이 이뤄지도록 발람을 지원하게 됩니다.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정말 굳이 성경을 펼쳐들고 그를 평가하지 않아도 누가보아도 잘못을 행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사람들, 뒤에서 험담하면서 앞에서는 가식적으로 행하는 사람들 등 어울리지 않고 싶을 만큼 인격적으로 어린 사람들 말입니다. 

오늘 발락이 그런 듯 보입니다. 전쟁에 나서기는 무섭고 소문은 들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큰 능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지켜주시는 지는 알고 있어 대놓고 그들을 무시할 수도 없는 연약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점괘를 보고 저주하기도 복을 빌기도 하는 발람에게 자신일 할 수 없는 영역의 방법으로 그들을 뒤에서 저주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성숙한 발람은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할까 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합니다. 

설령 그가 큰 나라의 왕일지언정(부족의 족장일지언정) 그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오로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말씀대로만 내가 말하겠다 다짐합니다. 

12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비록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였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응당 발람처럼 행동해야 하지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직  주님 뜻만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배아파하며 그것이 잘못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주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잘 되든 못 되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이단으로 판명된 목사님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본인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이 어젯 밤 나에게 특별 계시로 " 등등으로 성경과 반대되거나 엇 비슷한 말들을 함으로써 나는 특별하다는 자랑 혹은 자만심으로 목회(?)를 하여 교리에 위반된 내용으로 이단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주의 일을 하시는 목회자들은 물론 그리스도 인이라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만을 듣고, 말해야 합니다 

특별계시이든 환상이든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지를 자세히 묵상하고 살펴야 합니다. 

 

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며
(시 64:5)

이직을 준비하던 남편이 불법 운영을 포착하여 전문 포상금 수령으로 생계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더라 나도 20년 가까이 일했던 일과 관련된 불법현장을 적발하여 포상금으로 부과소득을 좀 올려볼까?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비록 불법이지만 몰랐을 수도 있으니 괜히 다른 사람의 앞길에 올물을 몰래 놓는 행동은 하지말자고 설득하였습니다. 

오늘 발람은 거듭 자신의 걸림돌이 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자고 발람을 끌고 다닙니다.

 

13   발락이 말하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14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
15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나뵐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하니라

이토록 지극 정성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할 바에는 자신의 영토를 다른 방향으로 늘리거나 하다못해 아모리인처럼 전쟁이라도 일으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안전한 방법이 발락을 통한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였습니다. 얼마나 비겁합니까? 

자신은 손해를 하나도 보지 않고 오직 승리만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오늘 발락의 모습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모습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입니다.

손해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승리를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존 방식아닌가요? 

그러나 오직 자신과 자신의 민족만을 위하여 발람을 재촉하는 발람은 하나님의 정죄함을 얻고 그의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합니다. 

 

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23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24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저주보다는 축복을 하는 발람의 모습이 변방의 점쟁이가 아닌 하나님의 전지자 같지 않나요? 

지위고하를 따지자면 발락이 더 높고 발람은 낮은 자인데 둘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발람이 더 높아보입니다.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입어 더 높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골 출신에 그렇게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았고 책도 많이 읽지 않은 평범하기 보다 더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로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은혜를 꺼내기 뒤해서는 흘러 들은 단어, 흘러들은 글귀라도 토대로 해야 풍성한 은혜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으로 설교를 시작하자 회심한 사람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행 2:14-41)

지위고하, 상식의 수준 등은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변하고 심지어 지혜자들보다 더 지혜롭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다른 이를 저주하기 위해 애를 쓴 발락,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잠시나마 선지자였던 발람

이름은 비슷하나 정반대였던 이 둘 중 어느 쪽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요? 당연히 발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지위적으로는 낮은 위치였지만 종국에는 같은 위치에 올라  지혜롭게 행동한 발람 

당연하게도 발람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하루 험담하고 저주하기 보다 하나님의 사람을 축복하길 소망합니다. 

내게 주어진 일들을 지혜롭게 처리하여 비록 낮은 자리에 위치하지만 가장 놓은 곳에서 하나님을 칭송하게 하옵소서 

이 하루를 오로지 하나님께 드리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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