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5장 묵상_과학적이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
간혹 성경을 읽다보면 좀 억울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여인들에 대한 말씀들인데요,
그 중 하나가 오늘 본문의 아내의 간통을 밝히는 제사와 절차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정서에 대입해 보면 남자는 간통을 밝히지 않고(물론 유부녀와의 간통은 죄로 다스렸습니다) 되려 여종이나 다른 여자를 취하였으면 그를 아내로 맞이하며, 여자는 간통이 의심이 되어도 그가 더렵혀지지 아니하여도 소제와 쓴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은 퍽 억울합니다.
혹여 남편이 의처증이 있을 경우 그 여인은 매번 이 의심의 소제로 제사장 앞에 가서 쓴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심지어 이것에 대해 남편은 무죄하다고 합니다.
또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토기에 담긴 거룩한 물에 성막 바닥의 티끌을 넣은 물을 보리가루로 제사를 드린 후 마시게 하였을 때, 여인이 불륜을 저질렀을 때는 배가 붓고 그의 넓적다리가 마른다고 하였습니다.
흙가루가 들어간 물을 마신다고 배가 부풀거나 넓적다리가 마르지 않습니다.
물론 불륜으로 인해 몸의 변화가 생긴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겨우 생길 수 있는 몸의 변화는 임신인데, 오늘 말씀에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게 된다고 합니다.(28절)
임신으로 생긴 아이가 불륜으로 생긴 아이인지 분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법을 만드셨을까요?
저는 두가지의 전제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공동체의 믿음의 증거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정말 신기합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적용해서 성전의 티끌을 탄 물을 마시면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마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기억나게 하는 소제는 향료조차 들어가지 않는데, 보리를 태우는 냄새가 전두엽을 자극해서 진짜로 기억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리를 태우는 연기가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 입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은 억울함으로 그 연기에 빗대어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잘못한 것이 있는 사람은 과학이 발전하기도 전인 투명한 믿음으로 배가 부으면 어떡하지, 하나님이 벌을 내리시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배가 붓고 넓저다리가 마르게 하는 비과학적인 상황을 실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의처증이 있는 남편으로부터의 보호입니다.
의처증이 있는 남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아내의 이야기들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남편의 폭력과 폭언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아내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의처증이 있는 남편에게 차라리 의심의 소제로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맞설 수 있습니다.
혹은 잦은 의처증으로 자주 제사장 앞에 서게 되더라도 제사장의 만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남편 스스로 제사장 앞에 자주 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의심의 소제는 깨끗한 여인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두개의 전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너무나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그렇기에 신앙의 생각을 나눌 사람이 전혀 없는 시골교회에 다니는 저도 이렇게 인터넷으로 신앙의 생각을 나눠볼 수 있는 통로가 생겼습니다.
과학이 주는 혜택은 말하기에 입이 아플 지경입니다.
그 과학으로 하나님의 존재가 밝혀지기도 하지만 과거의 말씀들이 비과학적이라며 하나님의 전부를 비과학의 영역으로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이 땅의 부흥이 있었던 1907년에는 서서히 지식이 들어왔을 때고 대부분이 지식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믿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평균 학력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이단이 많이 생기고 하나님을 지식으로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원하시는 하나님.
과학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믿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순수한 믿음. 아멘, 아멘 대답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한 시기인 듯 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계단하며 제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가 하나님의 크신 영역 안에 들어가는 하루 이길 소망합니다.
작은 머리로 다 헤아릴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의지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하며 과학적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내 삶에 오직 하나님만이 드러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