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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함께/하루 한 장 성경읽기

하루 한 장 성경읽기_창세기 39장

by jujumomy 2022.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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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옷을 입은 도련님이 한순간 팔려가게 되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고 노예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인 가정 총무가 됩니다. 

미래를 기대하기도 보장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사위로서 라반의 일을 봐주었지만 하나님이 그 소유를 풍성하게 해 주셨으며, 요셉은 노예로 보디발의 집 일을 하지만 이 역시 하나님의 복이 내려 소유가 풍성하게 됩니다. 

비록 자신의 소유가 많아진 것은 아니지만 주인의 집이 풍성하게 됨을 보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요셉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나를 믿어준 주인을 배신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 말합니다. 

좋은 꿈을 품게 해 주시고는 버림을 받은 소년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 더욱 주를 향해 바라보는 요셉의 모습이 나와는 참 많이 달라 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언제나 의식하여 눈에 보이는 사람의 눈이 아닌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 애쓰다가 오히려 누명을 입은 요셉의 모습이 정직하면 손해보는 현실과 다를 바 없어보입니다. 

 

합리적인 사람은 손해를 감수하지 않습니다. 주인과 노예는 없고 갑과 을의 차이도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하는 현대사회에서 무조건 적인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사고입니다. 

요셉이 만약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그냥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어느 흔한 유럽영화에서처럼 주인의 눈을 피해 불륜은 이어가다가 주인을 없애버리고 그 집을 자신의 소유로 차지하는 것? 혹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요?? 

물론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이루려고 한다면 귀족 여인의 힘을 등에 업고 한자리 차지하려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비약적인 추측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누명을 쓰진 않았을테고 감옥에 갈 일은 없었을테지요 

어차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큰 유혹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보는 눈이 없을 때 자유함을 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내 안에 품고 있으면서 사람의 눈이 없으니 하나님이 모르실 거라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무지한 일이 있을까요?

나 역시도 혼자 있는 시간에 하나님을 찾기보다 눈에 보이는 핸드폰을 더 찾게 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내 안에 계셔달라고 기도할 때는 마치 램프의 요정처럼 귀하게 내 곁에 있어달라고 하고, 유혹이나 내게 좋을 듯 보이는 죄 앞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듯 행동하는 나의 이중적 모습을 고백합니다. 

 

요셉은 오늘 주인에게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얘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얘기하고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나옵니다. 죄를 짓고 도망치듯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으려 도망치듯 나옵니다. 

유혹의 앞에서 나의 모습도 이렇듯 도망치듯 피하길 소망합니다. 

계산하거나 궁금해하지 않고 죄의 모양처럼 보일 때 그저 도망치는 모습. 오늘 요셉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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